비상금은 얼마가 필요한가
작년 여름, 냉장고가 갑자기 고장 났다. 수리비를 알아보니 42만 원이었다. 그 전까지 나는 비상금이라는 걸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통장에 있는 돈이 곧 비상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42만 원을 내고 난 뒤 월급까지 남은 기간이 2주였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돈이 있는 것과 비상금이 있는 것은 다르다는 걸.

비상금의 기본 원칙은 간단하다. 생활비의 3개월분에서 6개월분 정도가 표준이다. 월 생활비가 200만 원이라면 600만 원에서 1200만 원 사이라는 뜻인데, 이건 너무 큰 범위다. 실제로는 직업의 안정성에 따라 달라진다. 정규직이라면 3개월분, 프리랜서라면 6개월분을 목표로 잡는 게 현실적이다.
나는 지난 4개월간 월 50만 원씩 비상금 통장에 넣었다. 총 200만 원을 모았는데, 이게 내 경우엔 충분한 수준이었다. 월급이 어느 정도 안정적이고, 큰 병이나 사고가 없다면 200만 원이면 응급 상황에 대응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비상금 통장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
많은 사람이 비상금을 메인 통장에 두면 되지 않냐고 묻는다. 맞다, 기술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완전히 다르다. 같은 통장에 있으면 그 돈이 비상금인지 쓸 수 있는 돈인지 구분이 안 간다. 그러다 보면 필요 없는 지출에 손을 댄다.
별도 통장을 만들면 심리적 장벽이 생긴다. 비상금 통장에 접근하려면 한 단계를 더 거쳐야 한다. 그 한 단계가 생각할 시간을 준다. ‘이게 정말 비상인가’를 물어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올해 초에 비상금 통장을 만들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메인 통장에서 월급이 들어올 때마다 자동이체로 50만 원씩 옮긴다.
비상금을 넣는 주기와 금액
비상금을 넣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한 번에 목표 금액을 채우거나, 꾸준히 나눠서 모으거나.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월 50만 원씩 입금하는 방식인데, 이렇게 하면 심리적 부담이 적다. 한 번에 600만 원을 모으려니 막막하지만, 월 50만 원이면 일상에서 큰 불편함이 없다.
금액을 정할 때는 월급에서 필수 지출을 뺀 나머지를 고려한다. 내 경우 월급 280만 원에서 생활비 200만 원을 빼면 80만 원이 남는다. 그 중 50만 원을 비상금에, 30만 원을 투자나 여유 지출에 쓴다. 이 비율을 3개월 유지하면 150만 원이 모인다. 6개월이면 300만 원이다.
입금 주기는 월 1회가 가장 현실적이다. 월급이 들어온 직후 자동이체로 설정하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나는 월급 입금 다음날 자동으로 50만 원이 비상금 통장으로 옮겨지게 설정했다. 이렇게 하면 깜빡할 일도 없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인다.
비상금이 필요한 순간들
비상금이 실제로 필요한 상황은 생각보다 자주 온다. 냉장고 고장처럼 큰 것도 있지만, 작은 것들도 있다. 치과 신경 치료에 30만 원, 자동차 정기 점검에 25만 원, 친구 결혼식 축의금 50만 원. 이런 것들이 한 달에 몇 번 겹치면 월급만으로는 버티기 힘들다.
그럴 때 비상금이 있으면 심리적 안정감이 완전히 다르다. 돈이 없어서 신경 쓸 일이 줄어든다. 비상금 통장을 만든 이후로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겨도 당황하지 않게 됐다. 그 돈이 어디서 나올지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비상금 통장 선택할 때 확인할 것
비상금 통장을 만들 때 금리는 큰 고려사항이 아니다. 비상금은 자주 넣고 거의 빼지 않는 돈이니까, 금리가 약 0% 높은 것과 낮은 것의 차이는 크지 않다. 대신 중요한 건 접근성이다. 필요할 때 빠르게 인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대형 은행의 일반 통장이 가장 무난하다.
또 하나 확인할 점은 자동이체 수수료다. 일부 은행은 자동이체가 무료지만, 어떤 곳은 월 100원씩 받는다. 월 50만 원씩 옮기는데 월 100원씩 떨어지면, 12개월에 1200원이다. 작은 돈이지만, 비상금처럼 장기간 모으는 통장이라면 확인해두는 게 좋다.
비상금이 부족해졌을 때
비상금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다시 채우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나는 비상금을 사용한 적이 아직 없지만, 만약 냉장고 고장처럼 40만 원을 썼다면, 그 달부터 월 70만 원씩 넣어서 3개월 안에 다시 채우는 식으로 계획할 것 같다. 비상금은 언제 필요할지 모르니까, 최대한 빨리 원래 수준으로 돌려놓는 게 좋다.
비상금 통장의 목표 금액에 도달한 후에도 계속 입금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게 나중에 깨달은 점이다. 생활 속에서 작은 비상금들이 계속 필요하기 때문이다. 목표 금액에 도달하면 월 입금액을 줄이되, 완전히 멈추지는 않는 게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