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투자가 답이라고 믿었던 시절
2023년 가을, 월급 중 약 50만 원을 따로 떼어 ETF 여러 개를 한꺼번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코스피 추종 ETF, 미국 S&P500 ETF, 나스닥 ETF, 채권 ETF, 금 ETF까지 다섯 종목을 골고루 쪼개서 넣었습니다.

머릿속에는 ‘분산하면 안전하다’는 생각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3개월 뒤 계좌를 열어보니 수익률이 -약 4%였고, 그중 어떤 종목이 왜 떨어졌는지 전혀 파악이 안 됐습니다.
머리가 멍했습니다. 분산했는데 왜 다 같이 떨어졌을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제가 담은 다섯 종목이 결국 미국 대형 성장주에 몰려 있었습니다.
이름만 달랐지 실질적으로는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자산들이었던 겁니다.
분산투자라는 개념 자체는 맞습니다. 다만 ‘종목 수를 늘리는 것’이 분산이 아니라는 걸 그때 처음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자산 간 상관관계가 낮아야 진짜 분산이고, 비슷한 자산을 여러 개 담으면 수수료만 더 내는 셈입니다.
함정은 수수료가 아니라 구조에 있었습니다
ETF를 고를 때 수수료(총보수)만 비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연 약 0%짜리와 연 약 0%짜리를 비교하며 저렴한 것만 골랐습니다. 그런데 수수료보다 훨씬 크게 수익에 영향을 준 것이 있었는데, 바로 환헤지 여부와 분배금 과세 구조였습니다.
환헤지를 하는 ETF는 달러 강세 구간에서 환차익을 전혀 못 누립니다. 2023년 하반기처럼 원달러 환율이 약 1,350원 수준을 오가던 시기에 환헤지 ETF를 들고 있으면 환차익이 0원이었습니다.
반면 환노출 ETF는 같은 기간 환율 효과만으로 약 3~5% 추가 수익이 붙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차이를 모른 채 환헤지 상품을 담았고, 나중에 비교해보고 나서야 아차 싶었습니다.
분배금 과세도 놓치기 쉬운 부분입니다. 국내 상장 해외 ETF의 분배금은 배당소득세 약 15%가 원천징수됩니다.
금융소득이 연 2,000만 원을 넘으면 종합과세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절세 계좌인 ISA나 연금저축 안에 담으면 이 세금을 미루거나 줄일 수 있는데, 저는 처음에 그냥 일반 계좌에 전부 담았습니다.
세금 구조를 나중에 알고 나서 계좌 이동을 고민했지만, 이미 매도 후 재매수 과정에서 수수료와 세금이 한 번 더 발생했습니다.
실패에서 정리한 것들
지금은 포트폴리오를 훨씬 단순하게 가져갑니다. 연금저축 계좌 안에 S&P500 추종 ETF 하나, IRP 안에 채권 ETF 하나, 나머지 여유 자금은 파킹통장에 두고 있습니다. 종목 수는 줄었지만 자산 성격이 다르고, 세금 처리도 명확합니다.
재테크에서 실패가 빠른 이유 중 하나는 ‘구조를 모른 채 방법만 따라 하는 것’입니다. ETF를 산다, 분산투자를 한다는 방법은 맞을 수 있어도 어떤 계좌에 어떤 성격의 자산을 담느냐에 따라 같은 수익률이라도 손에 쥐는 돈이 달라집니다.
연간 약 900만 원 한도의 연금저축과 약 300만 원 한도의 IRP를 합산하면 세액공제 혜택만으로 연말에 약 약 16% 환급이 가능한데, 이걸 활용하지 않고 일반 계좌로만 굴리면 세금 측면에서 손해를 보는 구조입니다.
분산투자 자체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종목 수보다 자산 성격을, 수수료보다 세금 구조를 먼저 따져보는 순서가 필요합니다. 저는 그 순서를 거꾸로 밟았고, 약 1년 치 수익을 세금과 수수료로 돌려보낸 뒤에야 제대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